2025년, 한국 기업 인사 시스템에 또 하나의 분기점이 생겼다.
롯데가 전사적으로 직무급제를 도입한다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이 이를 단순히 ‘삼성이나 SK도 하는 제도니까, 이제 롯데도 따라가는구나’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롯데의 행보는 표면적인 ‘제도 수용’ 이상이다.
오히려 지금껏 산업과 소비 시장 모두에서 보수적이라 불려왔던 롯데가 ‘자기방식대로 파격을 택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롯데 직무급제, 무엇이 다른가?
직무급제는 기업이 직원에게 지급하는 급여를 ‘사람’이 아니라 ‘일’ 중심으로 설계하는 제도다.
기존의 연공서열 중심 체계에서는 연차와 직급이 임금에 직접적으로 반영되었지만, 직무급제는 그렇지 않다.
- 직무 난이도
- 조직 내 중요도
- 시장 경쟁력
- 성과 기여도
이 네 가지 기준이 종합적으로 평가되어 연봉을 구성한다.
다국적 기업에서는 오래전부터 이를 도입해왔지만,
한국의 재벌기업은 이를 도입하는 데 매우 신중했다. 이유는 단순하다.
‘기존 체계를 해체하는 비용’이 컸기 때문이다.
롯데는 그 부담을 안고, 도입을 강행했다.

삼성, SK와는 결이 다르다
삼성은 이미 2021년부터 ‘직책 중심의 성과급 체계’를 도입했고, 매년 직무별 역량을 수치화해 반영하는 보상 모델을 실행하고 있다.
SK는 더욱 진보적이다. 수평적 소통과 프로젝트 단위의 탄력적 배치를 통한 직무 평가 체계를 도입했다.
하지만 이들은 기업문화가 비교적 ‘민첩한 변화’를 흡수할 수 있는 구조다. 문제는 롯데였다.
롯데의 조직문화는 변화에 보수적인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위계 중심, 매뉴얼 중심, 그리고 부서 간 칸막이 문화까지.
이런 구조에서 직무급제를 도입하는 것은 단순한 제도 변경이 아니라 ‘문화 전환’에 가깝다.
그렇기에 이번 롯데 직무급제는 다른 기업과는 차별화된 전략적 선택이라고 볼 수 있다.

롯데의 직무급제, 어디까지 준비되어 있나?
현재 롯데는 6개 핵심 계열사(롯데쇼핑, 롯데칠성, 롯데제과 등)를 중심으로 시범적으로 직무급제를 도입했다.
도입을 위해 내부에서 진행된 조치들은 다음과 같다.
- 전 직무에 대한 정의서(Job Description) 수립
- 직무별 난이도 분석 및 점수화 모델 개발
- 직무 가치 기반 급여 테이블 재편성
- MZ세대 대상의 조직문화 설문 및 리포트 반영
이는 단순한 선언 수준이 아닌, 실질적 실행 단계로 진입했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 점이 ‘말만 번지르르한 시도’와 구별되는 이유다.

왜 롯데는 지금 움직였는가?
롯데는 지난 몇 년간 구조조정과 실적 악화라는 이중고를 겪었다.
특히 코로나 이후 오프라인 유통 중심 사업 모델이 한계를 보이며 ‘체질 개선’의 목소리가 커졌다.
또한 내부적으로는 젊은 인재 이탈이 문제로 떠올랐다.
성과가 아닌 연차 중심의 평가가 조직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린다는 경고 신호는 이미 여러 차례 있었다.
이런 흐름 속에서 롯데 직무급제 도입은 인재를 유지하기 위한 구조 개편의 해답이 된 셈이다.

중요한 건 ‘도입 이후’다
그렇다면 이 변화는 성공할 수 있을까? 아직 단언하기는 이르다.
직무급제는 제도 하나로 조직을 바꾸는 마법의 열쇠가 아니다.
실행의 정교함, 커뮤니케이션의 투명성, 그리고 관리자들의 의식 변화가 함께 병행돼야만 효과를 발휘한다.
직원들이 일한 만큼 받는다는 신뢰를 갖도록 만드는 것.
이것이 제도 그 자체보다 더 중요한 과제다.

롯데는 지금 자신에게 질문하고 있다
“우리는 누구에게 보상하고 있는가?”
“가치를 창출한 사람이 아닌, 자리에 오래 앉아 있던 사람에게 보상하고 있지는 않은가?”
롯데 직무급제는 그 질문에 대해 정면으로 답하려는 시도다.
이제 그 대답이 진정성을 갖고 조직 전체에 퍼져 나갈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그리고, 만약 그것이 가능하다면 롯데는 다시 한 번 ‘변화가 늦었지만, 방향은 정확한 기업’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